■ 진행 : 노종면 앵커
■ 출연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시민 사회에서는 전에 없는 강도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정부도 경제적 상응조치를 포함한 전방위 대응에 나섰습니다.
여권에서도 전쟁, 침략 등의 표현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이 시기를 과연 뭐라고 규정할지 그리고 지금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역사학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우용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우용]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노재팬, 불매운동 시작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국채보상운동, 그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던데 그 국채보상운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어떻습니까?
[전우용]
일제강점기가 아니고 일제강점 직전이죠. 1907년부터 일어났었고요.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 또 1907년 한국의 주권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는 상황에서 당시에 나라는 대한제국이었어요.
고종과 순종의 나라였죠. 일반 백성은 나라의 주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일본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그 빚으로 인해서 우리가 주권의 제약을 받는다고 판단해서 일반 백성들이 나라 빚을 나랏님 대신 갚자라고 들고 일어났던 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이거든요.
사실 우리가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1903년부터나 쓰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는 국민이 아니라 그냥 신민이고 백성이었죠. 그렇게 국가에 대한 책임감. 자기가 주권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들고 일어났던 운동이라서 이게 그 당시에 이른바 일반 농민들이 농촌에서 들고 일어났던 의병전쟁에 비유하자면 평화로운 의병운동이다.
그러니까 자기 나라도 아닌데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의병과 마찬가지로 주권도 없으면서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재산을 처분해서 나라 빚을 갚겠다고 일어났던 거거든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불매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주권자가 자기의 주권자로서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그때가 뭐랄까요.
격렬하고...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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