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를 시작으로 일본은 강제동원 역사를 지우려 하고 있지만 당시의 생생한 증언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40년 가까이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찾아 도와온 일본 시민 운동가의 기록도 그중 하나인데요.
이경아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기자]
20살을 갓 넘긴 부산 청년 김순길.
1945년 1월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곳은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였습니다.
청년은 그 가혹한 노동의 시간을 일본인 관리자의 눈을 피해 매일 일기로 기록했습니다.
"(일기 내용) '공습 경보가 끝나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작은 노트는 40여 년이 지나 한 일본인 손에 전해집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찾아 도와온 히라노 노부토 씨.
강제동원뿐 아니라 원폭 피해자인 김순길 씨가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때 가장 가까이서 도운 인물입니다.
[히라노 노부토 / 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 : (일본이 패전한) 1945년 8월 15일부터 '이제 너희는 외국인'이라며 차별하는 것은 너무나 부조리한 것이었습니다. 정의가 아니었어요.]
히라노 씨는 500차례 이상 한국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며 원폭 피해자를 찾아냈습니다.
그중 당시 군함도 등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은 이 오래된 노트에 빼곡히 남아있습니다.
"(노트 내용) "이건 하시마, 그러니까 군함도 얘기입니다. 이 사람은 '군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섬이었다'고. '나가사키에서 하시마에 상륙하니 아파트가 9층짜리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록들은 재일동포들이 힘을 모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강성춘 / 나가사키 민단 단장 : 나가사키 시는 위령비 건립 추진 초기만 해도 한국인 피폭 사실 자체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히라노 선생님 등 일본 시민단체들이 여러모로 조사한 것으로 (피해 사실을 시에 알리는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논란의 군함도를 포함해 일본은 엄연히 남아있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애써 부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백미러처럼 과거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히라노 씨는 믿고 있습니다.
[히라노 노부토 / 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 : 군함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역으로 일본이 찾아내 알려야 합니다. 차별이 없었다거나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 (중략)
YTN 이경아 (ka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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